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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설악산에서 만난 임기종씨는 키 158cm에 몸무게 62kg으로 호리호리한 체격이었다. 그는 이날 흔들바위가 있는 계조암까지 양초와 쌀 등 짐을 배달해 주기로 돼 있었다. “예전에는 냉장고와 같이 120, 135kg까지 나가는 짐을 지고 산을 올랐는데,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60kg 정도 지고 다니면 제 체격에 딱 맞더라고요.”
임씨는 설악동 신흥사 매표소에서 지게 없이 출발했다. 20분쯤 걸었을까, 임씨는 길옆 숲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그의 지게가 있었다. 임씨가 지게를 메고 5분여를 더 걸어 올라가자 양초 두 상자가 나왔다. 그 짐을 싣고 내원암으로 이동해 쌀 등을 추가로 실었다. “예전에는 입구부터 짐을 날랐는데, 이제는 차가 여기까지 들어와 짐을 내려놓으면 제가 지고 갑니다.”
70kg가량 나가는 짐을 지고 산을 오르던 임씨는 연신 거친 숨을 내쉬었다. 힘든 와중에도 그는 등산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연신 밝은 모습을 보였다. “숨차고 고통스럽지만 참고 올라갑니다. 제가 많이 힘들어하니까 등산객들이 말 거는 걸 미안하게 생각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짐을 지고 가더라도 여유 힘이 있으니까 다 답변해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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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씨는 16세 때 친형의 권유로 설악산으로 들어왔다. “형제가 많고 살아가기 힘드니 먹고살기 위해 시작했어요.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배운 게 없으니 짐 지는 일밖에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죽기 살기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3~4년이 지나니까 제 몸과 산이 한 몸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사람마다 재능이 있는데, 저는 짐 지는 게 재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처음 설악산에 들어왔을 때 함께 일하던 동료는 60명쯤 됐다. 등산객을 위해 산장과 휴게소에서 마련해 놓는 다양한 물건과 액화석유가스(LPG), 냉장고와 같은 대형가전 등을 옮겼다. 하지만 설악산 공원정비 사업으로 상가와 휴게소가 철거되면서 일거리가 줄었다. 지금은 계조암 한 곳에만 간간이 물건을 날라주는 것이 고작이다.
“초창기에는 비선대, 흔들바위, 비룡폭포, 대청봉, 양폭 대피소, 희운각 대피소 같은 곳에 다 올라갔으니 사람이 부족했습니다. 지금은 저 혼자밖에 없어요. 산장도 없어지고 휴게소도 없으니 혼자서도 할 일이 없어요. 요즘은 절에서 재 올릴 때 필요한 물품이나 식재료를 주로 올려요. 한 달 수입이 40만원도 안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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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씨는 짐을 지고 출발한 지 2시간여 만에 흔들바위 계조암에 도착했다. 짐을 계조암의 석굴 법당 안에 내려놓은 그는 밖으로 나와 약수 한 바가지를 떠 갈증을 달랬다. 운임은 3만원이었으나 이날 스님이 4만원을 더 챙겨줘서 총 7만원을 벌었다. 한쪽 무릎은 까져 피가 났다. 임씨에게 “괜찮으냐”고 묻자, 그는 “일하다 보면 흔히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힘들 게 번 돈 대부분을 그는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고 있다. 요양시설이나 장애인학교에 위문품을 전달하고, 주위에 있는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생필품을 사다 드린다. 이따금 효도관광도 보내드리는 등 꾸준히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이러한 선행은 지적장애 1급인 아들 때문에 시작됐다. 그의 아내 역시 지적장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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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을 돕기 시작한 건) 애 때문입니다. 독거노인들에게 쌀을 가져다드리면 굉장히 고마워하시고, 효도여행 보내드렸을 땐 너무 행복해 하시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볼 때, 저 또한 행복하고 너무 기쁘더라고요. 그래서 더 하고 싶어졌습니다. 너무 좋으니까. 어쩌면 중독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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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게꾼으로 살아온 50년 세월. 그는 설악산 지게꾼으로 살아온 삶을 “나의 벗이자 은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게 일을 하면서 모든 게 이뤄졌습니다. 내 이름 석 자도 알렸어요. 제 생각에 70세까지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때까지 건강이 허락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모르죠. 어떻게 될지. 사람 일이라는 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형우 기자 gophk@seoul.co.kr